비둘기에게 무슨 죄?

호텔에서 하룻밤 푹 쉬고 수송공원 주변으로 아침 산책을 나섰다가 아침 식사에 몰두하는 비둘기 떼를 만났고, 그 근처에서 난해한 현수막을 보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인간의 기준과 원칙에 맞춰 통제되고 있는 것이 (대)도시의 현실이다. 말하자면 인간도 자연물도 그들의 ‘원래 생태계’를 (잃어)버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생태계’ 안의 삶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둘기들 또한 그곳에 들어와 같은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생태계에 얹혀살게 된 자연물(풀·꽃·열매·물·벌레 등)과 동일 생태계의 일원인 인간이 흘리거나 던져주는 음식 쓰레기 등을 주워 먹으며 하루하루 넘기는 그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둘기들이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먹이를 주지 말라’ 한다.

그렇다면 비둘기의 생태계는 과연 어디란 말일까? ‘심심산골’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그곳에서 살아가는 비둘기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비둘기는 인간과 가까이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먹거리를 덜어 그들에게 주기도 하지만, 드문 일이다. 어차피 지금의 비둘기들이 심심산골로 모두 이주하지 않는다면, 도심의 풀이나 꽃들처럼 지금의 ‘새로운 생태계’는 인간과 비둘기가 공존하는 영역일 수밖에 없다.

저 현수막에 쓰인 대로 ‘비둘기로 하여금 당당한 생태계의 일원이 되게 해야 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인식이 필요하다. 고하귀천(高下貴賤)이나 종의 같고 다름을 분별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 도시 생태의 원칙이다. 함부로 ‘싸 갈기는’ 분뇨 등의 문제만을 들어 저 비둘기들을 ‘남의 생태계’에 난입한 침입자로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적 인식이다. 내쫓는다고 나갈 저들이 아니고, 모조리 죽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대체 그들의 ‘생태계’란 ‘우리 인간의 곁’말고 어디란 말인가. 비둘기들과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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