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몽과 황량몽 사이에서>를 읽고

  최건수 박사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난 여러 사람들을 기억한다. 매우 두드러지는 독창적인 점은 그들을 만난 ‘나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그가 묻고 있다는 점이다. “(…)고향의 항구사람들을 만난 꿈속의 나는 누구이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현실의 나는 누구인가 함께 숨 쉬며 교유(交遊)하는 저 학인들은 바장대며 꿈을 키워가던 그 시절의 내가 아니던가, 함께 숨 쉬며 교유하던 선배들은 누구이며 모두 어디 가셨는가. 나는 지나간 순간마다 바라보아 온 그 시절의 나들을 기억한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저 반짝이는 학인들은 (어쩌면 공부하면서 또 가르치던) 그 시절의 나가 아닌가. 과연 내가 저들인가 저들이 나인가.” 이것이 바로 호접몽의 내용이다.

또한 저자는 교수로서 정년의 종착역에 도달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제자들 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강호의 학인들이 벗으로 다가와 제자들과 함께 이 공동체의 몸피를 키우지 않았던가. (…)꿈같이 흘러갔지만 그들과 학문을 담론하여 지내온 것 또한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리곤 문득 잠에서 깨어 그는 이 회고가 한나절의 꿈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그가 표현한 황량몽의 내용이다.

그리고 꿈속의 가능성으로서 있던 ‘나들’ 이외에도 그는 실제적인 나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하나로 통일된 주체로서 기술하고 있다. 즉, 그는 시골 태안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항구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이후 고등학교에서의 짧은 교사 생활을 경험하고 해군사관학교 및 경남대학교의 교수를 거쳐 궁극적으로 숭실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호접몽과 황량몽 사이에서’를 읽는 독자는 꿈속의 ‘나들’과 실제적 주체로서의 나의 관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꿈에 등장하는 ‘나들’이란 사실은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세계의 존재들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들은 기억 속에 여러 가능성들로 존재해 있다가 저자에 의해 특별히 현실적인 존재로 실현된 것들이다. 부연하면, 기억 속에는 이들 세 종류의 ‘나들’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여러 ‘나들’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개념 아래 저자는 세 가지 나만 불러낸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항구 사람들을 만난 나, 제자들을 만난 나, 학인들을 만난 나 이 세 ‘나들’은 하나로 통일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저자가 연구하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 즉 학문과 교육을 통한 ‘나 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저자의 현실 세계는 이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여, 위층에는 저자의 무수히 많은 ‘나들’ 중에서 현실적으로 실현된 ‘그 시절의 나들’이 있고, 아래층에는 최종적으로 오늘날 통일된 실제 몸의 주체로서의 또 하나의 나가 그의 현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중적인 구조의 ‘나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실제 몸으로서의 나라는 주체가 기억 속의 ‘나들’을 사유화함(변환시킴)으로써 그들을 정신적 자양으로 삼을 수 있었고, 저자는 그 덕분에 오늘날 자신의 주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몸속에는 항구 사람들을 만난 나, 제자들을 만난 나, 학인들을 만난 나 모두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하나의 느낌과 모습으로 진입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공동체의 몸피를 크게 하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공동체의 몸피는 저자가 지각한 자기 몸의 크기와 나눠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저자가 그들을 만난 ‘그 시절의 나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물었다는 점이 어째서 저자의 독창성을 알려주는 신의 한수가 된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창조성은 바로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개념적 느낌을 인식하였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느낌은 그의 글에서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위에서 말했듯이 세 가지 ‘나들’을 크게 하나의 나로 통일시키는 기능이다.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개념이 없이는 ‘나들’은 통일될 수 없고, 단지 여러 많은 사람들을 만난 ‘나들’처럼 가능성에 그치고 결국 그의 현실 세계에서 추방될 뿐이다. 예를 들면, 빨강이라는 개념적 느낌이 먼저 생성되어 규정하기 전까지는, 붉은 악마의 빨강이나 빨강 사과, 빨강 신호등 등 아무리 열거하더라도 그것들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들 자체로만은 하나의 빨강을 규정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들은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고 실재하는 하나의 빨강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개념적 느낌은 시간적 세계에서의 나를 학문과 교육에 한정시켜 저자로 하여금 지각하게 하는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주체성에 형상이 있다면 그것은 학문과 교육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벽촌에서 출생한 나는 중·고교 및 대학 졸업 후 교사와 교수라는 인생의 주체가 되기에 이르렀음을 지각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이울러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느낌은 저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가치를 주체적으로 평가하도록 만든다는 점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지나간 고등학교 교사 시절이 짧았음을 아쉬워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정년을 맞아 행복한 감정으로 자신의 주체를 형성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 시절의 나들’이라는 개념적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주체를 형성해 왔다. 그는 자기 주체의 형성을 위한 개념적 모험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호접몽과 황량몽이라는 한나절의 꿈들을 사유화하여 지금까지 달려왔듯이 아직도 남은 반나절이 있음을 그는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반나절의 인생에서도 한 층 더 높은 창조와 꿈의 반복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가 속한 공동체의 몸피는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글을 읽는 독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호접몽 #황량몽 #최건수 #그_시절의_나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