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커피

마시는 커피의 농도가 엷어지고 양이 줄어들면서 나이 들어감을 자각한다. 한참 때는 하루 두세 잔의 에스프레소를 즐겼다. ‘잠자려면 커피를 끊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읽어야 할 책들이나 써야 할 글들이 많으니, 잠 안 오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남들이 호소하던 불면증을 ‘생산의 활력(活力)’으로 착각하며 몸과 마음을 갉아 온 것. 그러다가 불면증을 자각하게 되면서 무분별하던 젊은 시절을 통렬히 반성하게 되었다. 드디어 하루 한두 잔으로 줄였고, 그것도 ‘디카페인 커피’로 바꿨다. 카페인 없는 커피, 내 고향 사투리로 ‘개미레없는’ 커피였다. 빵과 함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던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먹음직한 누룽지를 발견했다. 아내가 마트에서 사 온 누룽지였다. 문득 쌉쌀한 커피와 구수한 누룽지의 조합을 상상했고, 즉각 실천으로 옮겼다. 한 스틱의 디카페인 커피와 섞은 적당량의 누룽지에 팔팔 끓는 물을 부었다. 누룽지의 구수함이 커피의 쌉쌀한 맛을 어루만져서인가. 푸근한 풍미가 ‘딱’이었다. 그날부터 내 ‘누룽지 커피 시대’가 열렸다.

누룽지 커피를 마시며 아련한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60년대 말, 해병으로 군복무 중 베트남전에 파견된 내 사촌 형이 있었다. 용맹함을 전 세계에 떨치던 청룡부대의 핵심 전사였다. 그는 무사 귀국했고, 특별 휴가를 나왔다. 그의 손에는 큰 선물 보따리가 들려 있었는데, 초콜릿을 포함한 미군들의 보급품으로 그득했다. 인사하러 우리 집에 들렀다가 이것저것 꽤 많은 선물들을 남겨놓고 갔다. 그가 돌아간 뒤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이상한 작은 봉지들을 발견했다. 알파벳을 배우기 전이니 그득 쓰인 영어를 알아먹을 길이 없었다. 뜯어보았다. 검정 가루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뭘까? 어른들과 함께 우리는 ‘고놈’의 정체를 놓고 며칠간 고심했다. 사촌 형은 이미 귀대한 뒤여서 딱히 물어볼 곳도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 밥을 먹다가 숭늉에 밥을 말았다. 갑자기 그 봉지들 생각이 났다. 시험 삼아 물을 부은 밥그릇에 한 봉지 털어 넣었다. 검게 변한 밥과 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처음엔 쓰고 고약했다. 그러나 몇 숟갈 먹다 보니, 구수한 숭늉과 어우러진 그 맛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아하, 이렇게 먹는 약인가 보다! 쾌재를 불렀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자랑 겸 발설을 하고 말았다. 그 말이 선생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이들도 선생들도 모두 심심함에 지쳐있던 마당에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조규익은 월남에서 가져온 봉지 속의 시커먼 약을 밥에 말아 먹었대요!’라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은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이 말씀을 꺼내셨다.

‘규익아, 그 봉지 속의 가루로 밥 말아먹으니 어떻던?’

‘씁쓸헸시요.’

‘당연허지 임마. 그거이 커피라는 거여~!’

종례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왔다. 숨차게 달려와 어머니께 보고드렸다.

‘옴마, 선상님 말씸이 그게 커피라는 거라구 허시네유~!’

‘그려? 그렇게 쓴 걸 뭣 헐라구 마신댜~?’

그렇다. 어린 나이의 나는 미국의 커피를 그렇게 접했다. 그것도 커피를 ‘숭늉으로 말아놓은 밥’에 넣었으니! 이른바 ‘숭늉 밥 커피’를 만들어 먹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 그 시골구석에서 벌어진 것 아닌가. 그로부터 60여 년 만에 커피 문화가 꽃핀 ‘선진 대한민국’의 식탁에서 나는 ‘누룽지 커피’를 제조해 마시고 있다. ‘누룽지 커피’에서 생소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바로 그 옛날 ‘숭늉 밥 커피’에서 느꼈던 구수함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각은 지문보다 정확하다’는 내 지론이 타당함을 한 번 더 입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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