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으로 근원 찾기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 면사무소 옆 장터에 갔다가 처음 맛본 짜장면. 그 부드러운 감칠맛의 기억이 강했으나, 다시 맛볼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중졸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고 자축하기 위해 친구들을 시장 골목의 중국집으로 불렀다. 짜장면 맛이 추억으로 남게 된 건 바로 그 때. 서울 살이 37년 동안에도 짜장면은 간혹 먹었으나, 그 첫 기억과 추억이 떠오른 적은 없었다. 분주하고 번잡한 일상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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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으로 돌아와, 한적한 어느 면 소재지를 지나던 중 시장기가 동했고, 짜장면집이 바로 옆에 있었다. 첫 젓가락질에 잡힌 몇 올의 면 줄기들이 옛 맛의 기억을 소환했다. ‘미각은 지문보다 정확하다’는 속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준 고향의 그 집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 그 즈음부터 짜장면 맛의 탐색은 시작되었다. 짜장면의 원조라는 인천 차이나타운에도 들렀다. 내 혀에 남은 맛의 단초가 혹시 거기에 있을까 해서였다. 짜장면 맛 찾기를 통한 내 ‘근원 찾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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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터에서 친구들과 짜장면의 추억을 공유한 뒤 노마드로 세상을 전전하다가, ‘고향 가까운 곳’에 내려와 그 맛을 찾아다니는 오늘까지 반세기가 넘었다.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를 못 잊어 벼슬을 버리고 귀향했다는 서진(西晉) 문장가 장한(張翰)의 ‘순갱노회(蓴羹鱸膾)’ 고사도 있지 않은가. 벼슬과 명예를 구하며 타향을 전전하는 일의 부질없음을 자각한 그가 고향에 내려온 것도 바로 맛의 추억 때문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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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가 나를 변화시키고 키워준 ‘혁명의 시간’이었다는 건 섣부르고 헛된 자부였다. 거울 속엔 콧물 찔찔 흘리던 옛날의 내가 빈손으로 돌아와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취의 자부심 무너지는 동안에도 고향의 짜장면은 이곳 전원의 한 구석에서 여전히 방긋 웃고 있었다. 그러니 짜장면을 손쉽게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싸구려 음식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누구든 자성(自性)을 관조할 때가 되면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소울 푸드’ 짜장면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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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08/02/TQ2JFX5UENGYRMKSJTBX4HK4MA/


[[일사일언] 짜장면으로 근원 찾기

일사일언 짜장면으로 근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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