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양이・숲새 등 ‘전원의 친구들’과 제법 소통한다고 자신하는데, 착각일까. 인간의 말을 건네지만, 늘 동물의 눈빛과 표정으로 응답하는 그들. 언젠가 ‘이들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곧 냉정을 되찾았다. 이들마저 인간의 말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미 말들의 홍수에 갇힌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판단한 것. 소통의 행복보다 그로 인한 분노가 더 커진다면, 굳이 인간의 말을 강요할 이유는 없었다.
산길 30 리 밖, 중학 과정의 ‘학력인정학교’ 재학 시절. 종종걸음 2~3시간의 등하굣길엔 거의 매일 길목을 지키던 깡패들이 있었다. 행태만으로는 요즘 도시의 ‘학폭’과 비슷하던 그들은 늘 벌건 ‘눈알’ 부라리며 다짜고짜 험한 말로 기를 꺾은 뒤 폭행하곤 했다. 최근 뉴스에서 목격한 어떤 인사들의 표정과 말투가 낯익어, 몇 밤을 뒤척인 뒤 기억을 살려냈다. 옛날, 시골 등하굣길의 그 깡패들! 언론이라는 확성기를 움켜쥔 유력 정치인들에게서 그들의 말과 표정을 찾아낸 것이다.
대중은 조악(粗惡)한 정치인들의 말을 항상 접하면서도 자신들이 설 곳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부드러우나 논리가 정연하고 유머와 위트가 양념으로 섞인 말이 최상급의 정치언어다. 이런 언어는 대중에게 제대로 된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폭력성 그득하고 상황 따라 참과 거짓을 수시로 바꾸는 상당수 정치인들의 말은 말 아닌 배설물이다. 공적 공간에서 마구잡이로 던지는 빌런(villain)들의 폭언보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소통하는 전원 속의 동물들이 훨씬 낫지 않은가.
어릴 적 시골에 찾아온 선교 봉사자로부터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을 들었고, 철 든 뒤에야 말(씀)의 큰 뜻을 알았다. 실천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전하는 것만이 참된 말이라는 어떤 수행자의 가르침을 듣고, 행동과 다른 망언(妄言)의 홍수에 휩싸여 있는 현실을 인식하기도 했다. 무뢰배식 막말을 정치언어로 착각하면서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 말의 품위나 진실성이야말로 깡패와 정치인을 가리는 첫 조건임을,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역설해야 하는가.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07/26/ULCFF7ZM7RBOROJ2LDCHWTGENQ/
일사일언 막말은 정치 언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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