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를 찾아서

#고서를_찾아서

귀한 자료를 구해 자신의 이름으로 학계에 기여하는 것이 고전문학 전공자들의 로망이다. 녹록치 않은 현실 때문이었을까. 남들이 먹고 버린 #조박(糟粕)이나 열심히 핥으며, ‘가난한 #문헌학도의 팔자가 이러려니’ 체념하고 지낸 세월이 길다. 선학들이 닦아놓은 길을 충실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고(문)서들을 부지런히 찾아내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몇몇 선학들을 유심히 관찰해왔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그 힘이 부럽고 비결이 궁금했다. 자료에 대한 갈급(渴急)의 세월. 그러나 내게도 ‘관대하고 통 큰’ 조력자들은 있었다.

‘#청기와_ 장수’가 되면 안 된다는 신조로, 연구실에 고문서들을 비치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빌려주며 조언하시던 #나손 #김동욱 선생, 자료들이 필요하여 연구실과 서재로 간간이 찾아뵙던 #인산 #박순호 선생, 고서계의 큰손으로서 가끔 탐서 여행에 동행하고 귀한 자료들을 수시로 공유하던 #이현조 박사 등은 연구에 몰두하던 시절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은 고서계의 대가들 중 우뚝한 분들이다.

수시로 나손 연구실을 찾아 비치된 필사본 고소설들과 시가관련 기록들을 빌리고 질문 드리는 과정에서 자료 감식의 방법을 터득했다. 툭툭 던지시던 선생의 몇 마디 말씀들이 열 갈래, 스무 갈래 깨달음의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학문적으로 대성한, 그 분의 몇몇 후학들도 대개 그런 식의 가르침을 받았으리라. 급한 자료 요청 전화에도 늘 다정한 음성으로 응해주시던 인산 선생. 찾아뵐 때마다 연구실과 서재는 ‘#고서_세미나’의 현장이 되었고, 그 덕에 제법 많은 논저들을 펴낼 수 있었다. 고서 감별안과 소장 자료의 질・양으로 우뚝하던 이현조 박사. 호남・영남・서울을 함께 누비며 적지 않은 보물들을 건졌다. 예컨대 조선 사신들이 중국에서 당하던 외교참상을 생생하게 그린 <<#죽천행록>>, #현실_고발가사 <#거창가>에 관한 기존 담론의 오류들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한 필사본 <#거창별곡> 등은 그로부터 선뜻 양도받은 것들이다.

고서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절은 더 이상 아니다. 찾았다 해도, 귀한 자료를 오래 섭렵하며 자득(自得)의 이치를 담론으로 만들 만큼 ‘끈질긴’ 시절도 아니다. 고서가 있다하여 남에게 성큼 제공하는 낭만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05/03/A2BNE4TB5RCKFBCB4LFGTHHDJM/


[[일사일언] 古書를 찾아서

일사일언 古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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