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팜에 들어온 뜻은
-도연명을 오마주함-
조규익
산골마을 에코팜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에코팜이란 에콜로지(Ecology)와 팜(Farm)의 합성어이니, ‘생태농원’ 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에콜로지라는 말에 익숙하고, 외국 친구들이라도 찾아오면 ‘잡초 밭에서 헤매는’ 내 뜻을 대뜸 알아줄 것이니, 그냥 에코팜이라 부른다. 번잡한 세상을 피해 조용한 전원으로 돌아가 내면을 관조할 때가 된 것일까. 전원에서 심원한 도(道)의 궁극을 추구한 옛날의 은사들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리라는 믿음이 해가 갈수록 깊어졌다. 에코팜에 들어와 세상에서 힘들여 얻은 한 줌의 씨를 뿌리고 가꾸며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지난날의 내 삶을 정리해 보리라. 그것이 전원을 찾게 된 생각의 단초였다.
20대부터 열심히 글을 써서 벼슬을 구했고, 스물아홉에 가까스로 작은 벼슬 하나 얻은 도연명. 전원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이 초초하지만 아름다웠다. 글재주 덕에 미관말직이나마 얻어 그럭저럭 13년 쯤 벼슬아치로 살 수 있었으리라. 결국 알량한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전원으로 돌아온 것은 42세, 작은 현(縣)의 우두머리 시절이었다. 박학하고 글 솜씨 좋던 그 천재가 전원으로 돌아간 것을 후세의 지식인들은 서릿발 같은 자존심에서 나온 ‘멋진 결단’으로 추앙해왔다. 나도 동감이나, 그와 생각은 얼마간 다르다. ‘생활인’이었을 그의 결단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몹시 어렵던 시절. ‘오두미(五斗米)를 위해서라도’ 굴욕을 감내하며 잠시 눈 한 번 질끈 감았어야 했다. 무슨 오기가 그리도 중하기에 배고픈 식솔들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 있었단 말인가. 감독 차 내려온 군청의 관리가 소인배라 한들 그들의 요구대로 복장 한 번 단정히 하고 맞이했더라면 되었을 일이거늘, 무슨 기개로 벼슬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듯 전원으로 돌아갔단 말인가. 원수 같은 구복지루(口腹之累)가 전원에서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랬음에도 나는 그가 좋다. 자신을 기다리는 무언가를 찾아 전원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풀이든 곡식이든 자신과 하나가 되어야 할 자연이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대략 20년 전부터 돌아갈 전원을 물색해왔다. 그러던 중 10여 년 전에야 가까스로 ‘황폐해지려는 전원’ 한 곳을 찾아냈다. 그 때까지는 내 정신이 육신의 노예로 전락한 건 아니라 착각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엄습하여 ‘귀전원’을 서두른 것이다. 일단 지난날이 그르고 지금이 옳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난날은 깨닫기 전 ‘무명(無明)’의 시간대요, 지금은 깨달음과 자각의 시간대. 지금이라도 잘못 들어 헤매던 길을 곱씹으며 청산한다면, 앞으로 크게 잘못 될 일은 없으리라 믿은 것이다.
내가 찾아들어온 에코팜의 정신이란 대체 무엇일까. ‘자유는 최대로, 통제는 최소로’가 그 철학의 출발임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전원 속의 ‘나’는 권력체가 아니라, 통제를 미워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연 속 미물들 가운데 하나다. 자연 속의 내 이웃들과 공존하며 주어진 삶을 지탱해가는 존재로서 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을 도와주는 소임이나 묵묵히 실천할 뿐이다. 농약이나 제초제로 그들을 죽이는 대신 그들과 어울리며 공존의 도를 터득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만 열면 이 곳 저 곳이 ‘풀 천지’의 산판으로 변하는 나날이지만, 최근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기적 또한 일어난 것이다. 보라, 나는 죽어도 저들은 살아남아 끈질긴 삶을 누천년 이어가리라!
도연명이 말하는 ‘황폐해지려는 전원’은 잡초 무성한 땅이다. 잡초 무성한 곳에 곡식이나 그럴 듯한 나무들이 자랄 수 있나? 그러니 황폐해질 수밖에! 촌로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꾸중들을 던지겠지만, 잡초의 삶을 인정하고 적절히 통제하며 그 가운데 곡식이나 나무들을 심어 전체적으로 공존을 추구함은 어떨까. 그러니 그가 조화의 파괴로 마구 거칠어진 땅, 관리 부실로 강인하고 우악스런 잡초가 점령해버린 공간을 ‘황폐해지려는 전원’으로 묘사한 것도 당연했으리라.
각종 잡초들로 가득 차 곡식 자랄 틈 없는 현재의 에코팜. ‘천하태평’ 초보 농부의 무책임이 꽃처럼 피어나는 현장이다. 그 게으름 덕분일까. 에코팜의 잡초들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것일까. 뽑아내는 즉시 다시 무성해지곤 한다. 어찌 잡초라고 우주 자연의 맥 바깥에 존재하고 있으랴. 씨줄 날줄로 촘촘히 연결되어 생명의 법칙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있을 수 없다. 우악스레 뻗어가는 잡초들을 따라가 보라. 땅 밑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하는 그들의 기상이 얼마나 대단한가. 무엇보다 녀석들은 대자연의 코드를 읽어내는 게 분명하다. ‘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라’는 누군가의 뜻을 알고 있다는 듯 뽑아내고 뜯어내도 쑥쑥 솟아오르는 그들. 잡초를 완전히 몰아낼 방법은 없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과 잡초가 치열하게 싸우다가 사람이 떠나면 잡초는 승자 혹은 점령군의 행세를 할 것이다. 모든 벌레나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것들과 조화를 이룬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 그것이 에코팜 농부의 꿈으로서는 최선이다. 잡초를 살살 달래가며 땅으로 하여금 생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게 하는 것만이 그 옛날 은사가 걱정한 ‘전원의 항폐화’를 막는 지름길이리라.
에코팜에 노마드의 천막을 펼친 지 벌써 두 해가 흘렀다. 고장 한 번 없는 에코팜의 초침 소리 속에 사람은 늙고 생태 가족들은 잽싸게 새 모습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조화를 이룬 온갖 동물들과 식물들이 주인으로 활보할 것이고, 고요와 평화 속에 시간은 또 흐를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새로운 은자가 나타나 ‘황폐해지려는 전원’을 가꾸기 위해 다시 이 땅을 찾으리라. 그 은자도 나도 떠나면 식물과 동물들은 새 주인으로 등극하고, 생태계의 교체와 순환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에코팜 #도연명 #생태농원 #에콜로지 #생활인 #오두미 #구복지루 #전원 #황폐해지려는_전원 #육신의_노예 #귀전원 #무명 #천하태평_초보농부 #노마드의_천막 #생태가족 #생태계의_교체와_순환 #조규익 #백규 #에코팜에_들어온_뜻은 #도연명을_오마주함
| 조규익 kicho57@hanmail.net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국제PEN 회원. 해사・경남대・숭실대 교수, Fulbright Scholar 등 역임. 제15회 도남국문학상・제2회 한국시조학술상・제1회 성산학술상 등 수상. <<한중일 악장의 비교 연구>>・< |
*이 글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