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글 – 칼럼/단상

  • 아버지의 지게

    아버지의 지게 xml:namespace prefix = “o” /  연구실과 강의실을 왕복하는 일상. 그 단조로움을 깨는 유일한 즐거움은 수영이었다.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물에 들어가 숨차게 땀을 빼고 나면 온몸이 가뿐했다. 쉼 없이 30차 왕복하면 36~40분이 소요되는 25m 레인에서 가당치 않게 대양의 돌고래들을 꿈꾸곤 했다. 가끔씩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하면 대개 며칠 지나지…

  • “쓴물이나 한 잔 허세!”

    “쓴물이나 한 잔 허세!” 몇 년이나 지났을까. 일이 있어 고향에 갔다가 친구의 사무실에 들렀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그가 마무리 멘트로 던진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일 내로 쓴물이나 한 잔 허세!” ‘쓴물’이라? 잠시 갸우뚱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커피’를 뜻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무릎을 쳤다. 그 날부터 아침마다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면서 그가 깨우쳐 준 ‘쓴 물’의…

  • 남도에서 만난 무서운 선비, 금남 최부 선생

    남도에서 만난 무서운 선비, 금남 최부 선생 <<최금남표해록>> 최부 선생의 표류 및 귀환 노정 신춘호(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회장) 박사로부터 금남 최부(崔溥, 1454~1504) 선생(이하 ‘선생’으로 약칭)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파릇파릇하던 시절, <<금남선생 표해록>>을 읽고 언젠가는 그 길을 밟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았는데, 흘러간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다! 끔찍한 표해(漂海)의 노정은…

  • 삼례 책 마을을 다녀와서

    삼례 책 마을을 다녀와서 책이 없어 곤궁하던 어린 시절부터 책이 넘쳐나는 지금까지 책과 뗄 수 없는 것이 내 삶이다. 남의 책들을 사 읽고 모으며, 가끔은 책을 펴내는 게 내 일 중의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막 학계로 진출하던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엔 책이 넘쳐나게 되었다. 지식인들의 수와 지식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지식정보의…

  • ‘헬조선’을 ‘유(토피아) 조선’으로!

    ‘헬조선’을 ‘유(토피아) 조선’으로! 며칠 전, 작은 술자리에서의 일이다. 여러 세대가 골고루 섞인 자리. 젊은이들이 약간 많았다. 어쩌다 ‘헬조선’이란 말이 나왔고, 그에 대한 논전이 들을 만 했다. 젊은 세대의 대부분과 비판적인 중늙은이들은 대체로 우리나라를 ‘헬조선’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말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지고 든 소수의 온건한 젊은이들이 오히려 돋보이기도 했다. 물론 ‘가스통 할배들’은 입에…

  • 박사학위를 받은 두 제자를 보며

    박사학위를 받은 두 제자를 보며 박사학위만 받으면 그럴 듯한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박사학위는 사람까지 달라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박사학위는 아무나 받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을까. 세상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외경(畏敬)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박사학위 수여식은 ‘긴 가방끈’의 종착역이었으며, 상아탑 안에서의 연찬(硏鑽)을 종결하는 표지가 바로 박사학위였다. 세상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존경하니,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 중국에 가려는 여섯 명의 야당 초선의원들에게

    중국에 가려는 여섯 명의 야당 초선의원들에게 ≪시경≫ 소아(小雅)편의 〈상체(常棣)〉라는 시가 있다. 그 4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兄弟䦧于牆   형제가 담장 안에서는 싸우지만 外禦其侮      밖으로는 (힘을 합하여)남의 업신여김을 막는다네 每有良朋      매양 좋은 벗이 있으나 烝也無戎      돕는 바가 없도다 지금 이 시를 읽는 마음이 곤혹스럽다. 어쩜 이렇게 우리나라의 형편을 잘 꼬집었을까. 우리는 같은 편임에도 늘 싸워왔다. 오히려 강한…

  • 책 도둑

    책 도둑 최근 긴요한 책 한 권을 샀다. 한 달 평균 두어 번씩 여러 권의 책들을 사지만, 이처럼 긴요한 책은 ‘모처럼’이다. 고전 자료들을 읽다가 풍수지리학 용어만 나오면 그 난해함에 의욕이 다운되곤 하던 터. 먼 지방의 서점에서 그에 관한 사전을 팔고 있었다. 대금을 지불한지 하루 만에 책이 배달되어 왔다. 만져보고 넘겨보니 좋았다. 알아야 할 것들이 빠짐없어 좋았다.…

  • 싸드(THAAD)와 중국의 커밍아웃

    싸드(THAAD)와 중국의 커밍아웃 근자 싸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우리 모두 그간 잊고 있던 중국의 정체와 본질을 아프게 깨닫는 중이다. 유사 이래 우리는 단 하루도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논리로 합리화하려해도, 중국과의 관계는 항상 ‘침략과 굴종/지배와 피지배’의 식민주의적 패러다임에 갇힌 채 지속되어 왔다. 그들이 자신들의 족속을 우리의 왕으로 세운 적도, 우리 땅을…

  • 불통의 시대를 살며

    불통의 시대를 살며 개인정보 보호의식이 웬만큼 정착되었을 법도 하지만, 가끔 나 스스로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두어 학기 전의 일. 자꾸만 나로부터 탈출하려는 영어를 붙잡아 앉힐 겸 매주 한 번씩 몇몇 교수들과 함께 만나는 외국인 교수가 있었다. 한 교수와 여러 학기를 지속적으로 만날 때도, 한 학기만으로 끝날 때도 있었으나, 매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