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글 – 칼럼/단상

  • 설거지를 하며

    조규익 나는 대부분 연구실에서 점심을 혼자 빵으로 때운다. 요즘 시중에는 맛난 빵들을 구워 파는 집들이 제법 많아졌다. 누구네 빵집이 맛있다고 매스미디어에라도 뜰라치면 빵집 주인들은 달려가 냉큼 배워온다고 한다. 그 뿐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 중에는 제빵의 달인이 되고자 세계 ‘빵의 나라들’에 유학을 하며 배워오는 모양이다. 10여 년 전 프랑스를 여행할 때 그곳 제빵 학원에 유학 나온…

  • 무성산(武城山)에 백규서옥(白圭書屋)을 짓고

    백규서옥의 옥호[은사 연민 이가원 선생님의 유작/연민체] 조규익 무성산 끝자락 조용한 곳에 그동안 내 환상 속에만 존재해 오던 백규서옥을 드디어 실물로 완공했다. 만 5개월 동안의 큰 역사(役事)였다.^^ 50여 년 전 대여섯 살 무렵, 당시 젊은 부모님께서 나무와 흙으로 지으시던 고향집의 추억이 아련히 남아 있는데, 마음속의 그 그림 위에 ‘내 집’을 덧 지은 것이다. 무성산의 용맥(龍脈)이 흘러내려…

  • 부러운 노마드(Nomad), 제이슨과 그의 가족

    제이슨 가족 사진[왼쪽부터 제이슨, 그레이슨, 놀만, 제이콥, 에벌린] 밝은 표정으로 놀고 있는 그레이슨과 에벌린 노마드(nomadism), 노마디즘(nomadism)이란 말이 유행이다. 각각 유목민(遊牧民), 유목(민)주의[遊牧(民)主義 혹은 유목민 정신]로 번역되겠지만, 그 내포는 간단치 않다. 우리 같은 농경 정착민으로서는 쉽지 않은 생활양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유목민이다. 풀이 우거진 곳을 찾아 천막을 세우고 소떼나 양떼를 기르는 사람들. 그러다가 동물들이 얼추 풀을 뜯어먹었다…

  • 내 그럴 줄 알았다, 단합할 줄 모르는 얼간이들!

    조규익 난세에 정당을 이끌만한 아무런 식견도, 정치력도, 순발력도, 카리스마도 갖추지 못한 황교안!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언제 당을 만들어 세속의 권력을 탐하셨더냐? 군중들을 광장에 모아 불의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지를 보여주었으면, 그 다음 일들은 정치인들에게 맡겨야지. 어찌 세속의 권력을 탐하여 정당까지 만들고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자초한 감옥살이가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희생이라도 된단…

  • 무성산 백규서옥의 상량식을 갖고

    상량식을 앞두고 대장목수 김병호 사장과 함께 조규익 ‘대장목수’와 감독 유수근 사장이 상량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겐 어릴 적 상량식의 어렴풋한 추억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붓글씨가 적힌 대들보 양끝을 광목천으로 매어 걸어놓고 어른들이 기원 비슷한 것을 늘어놓으시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천지신명’은 분명 잡신의 범주에 든다고 보아, 시큰둥한 반응을 내보이니 공사 팀원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 대통령을 보며

    조규익 박근혜가 탄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무능함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에 의해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날조되었고, 그들이 불법으로 동원한 이른바 ‘촛불 시위대’의 협박에 비겁한 대법관들이 꼬리를 내린 결과가 탄핵으로 귀결되었다고, 지금까지 그의 진영에서는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설사 부분적으로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해도, 당시 박근혜의 상황 대처 모습에…

  • 뉴욕대학(NYU)의 종신교수가 된 ‘조경현’

    지금까지 대학으로부터 연구년을 받아 두 차례[1998. 1.~1999. 2./2014. 1.~2014. 8.] 미국에 체류했었다. 첫 연구년은 LG 연암재단 지원의 ‘해외 연구교수’로 UCLA에서, 두 번째는 풀브라이트 재단(Fulbright Foundation) 지원의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각각 황금 같은 연구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두 곳 모두에서 다수의 교수들과 교유했는데, 그들이 속한 트랙들[tenure track/non-tenure track]에 따라 그들의 심리상태는…

  • ‘책 허기’를 채워 준 은인

    <<넓고 깊게 지식을 나누다>>-박이정 30년사 ‘책 허기’를 채워 준 은인 조규익(숭실대 교수) 음식과 책에 굶주리며 자랐다는 내 말을 요즘 젊은 세대들은 믿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책에 대한 굶주림의 트라우마를 공유한다. 사실 친구들 가운데 나는 유독 더했다. 너덜너덜한 교과서를 제외하면, 글자들이 인쇄된 비료 부대나 장에 가셨던 아버지가 간간이 들고…

  • 내 공부를 어떻게 ‘땡처리’할 것인가

    내 공부를 어떻게 ‘땡처리’할 것인가 조규익 Ⅰ 연구실에 앉아 자료 해독 · 해석으로 부심(腐心)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갓 20이나 되었을까. 앳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혹시 ‘부녀자취업알선센터’인가요?” 약간 긴장한 탓일까. 가느다란 목소리는 더욱 기어들어가듯 가늘어지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전화 잘못 거셨어요!”라고 건조하게 응답한 뒤 끊었다. 한참동안 책장을 넘기는데, 문득 세 가지 의문들이 내 작업을 방해했다. “전화를 잘 못 건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 학술답사 혹은 보물찾기

    학술답사 혹은 보물찾기 조규익 내 어린 시절 소풍날의 가장 가슴 뛰는 행사는 ‘보물찾기’였다. 파릇파릇 돋아난 나물더미 속이나, 하찮아 보이는 돌덩이 밑에 감쪽같이 숨겨진 쪽지를 찾아내곤 환호성을 지르던 친구들의 얼굴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쪽지 하나 찾아 봐야 연필 두어 자루, 공책 두어 권 주어지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 시절엔 보물을 찾아낸 아이들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