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글 – 칼럼/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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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글작가대회에 다녀와서
행사가 열린 컨벤션 센터 컨벤션 센터 로비 세계 한글작가대회에 다녀와서 해외 한인문학에 대한 작은 발표를 해달라는 이명재 교수의 부탁을 받고, 첨엔 망설였다. 창작문인들의 모임에 애당초 별 흥미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고도(古都)를 제대로 가꾸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경주라는 지역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회식과 환영만찬이 열린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약간 늦게 도착한 개회식엔 사람들이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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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방(壺山房)이 문을 닫았다네요!
호산방의 박대헌 사장 고서점 호산방(壺山房). 그 호산방이 문 닫았다는 소식을 어제 날짜 신문에서 접했습니다. 바닷물에 모래성 무너지듯 수많은 점포들이 어제도 오늘도 사라지는 세상. ‘서점이 어디 일반 가게와 같은가?’라는 제 믿음도 이제 접을 때가 된 것일까요? 십 수 년 쯤 되었나요? 종로서적이 닫을 때 며칠 동안 마음이 허전했었는데, 그 때보다 더 한 허탈감입니다. 사실 책에 굶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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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우물 안 개구리들-‘스누라이프’의 사례를 보며
역사의 고비들을 지나며 많은 차별을 겪어 온 것이 우리 민족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일본, 서구세계 등이 차별을 자행했거나 하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왜곡된 권력의 지형에 의한 지역과 계층적 차별의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식민 : 피 식민’은 식민주의 시대의 도식화된 차별구도였고, 그로 인한 민족적 자존심의 끔찍한 손상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탈 식민의 조류가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차별구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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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멋진 청년 세바스티안(Sebastian Lamp)
한국을 떠나기 전 백규서옥을 방문한 세바스티안 한여름날의 백규서옥에서 게리(Gary Younger), 백규, 세바스티안 백규서옥을 방문한 세바스티안의 지도교수 키이스 하워드(Keith Howard) 교수와 함께 한 겨울의 숭실 교정에서 세바스티안과 키이스 교수 한국의 전통악기들과 탈들이 진열된 키이스 교수 자택 거실 모습 키이스 교수의 한국음악 관련 디지털 자료들 며칠 전 일본의 교토에서 세바스티안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국내에 있는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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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과 함께 사는 일본인들
헤이안 신궁의 웅장한 도리이 헤이안 신궁의 응천문 헤이안 신궁의 본전 헤이안 신궁의 봉물인 각종 술 헤이안 신궁의 뜰에 세워진 기원 팻말들 헤이안 신궁의 본전 앞에 세워진 기원 나무들 나는 어려서부터 ‘일본인들은 귀신들과 함께 산다’는 말을 들어 왔고, 일본에 올 때마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는 그들의 신을 모신 집(즉 신사)에 참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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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음악 집중강의를 듣고
교토시립예술대학 일본전통음악연구센터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 Pendulum 기다유 샤미센 헤이케 비와 열강 중인 토키타 선생 칸사이 공항에 내린 것이 8월 17일 오전 10시 45분, 외국인 입국자들의 장사진에 끼어 입국수속과 짐 찾기를 마친 뒤 로비로 나오자 12시쯤이었다. 공항과 연결되는 JR 열차 매표소도 북적이긴 마찬가지. 간신히 13시 16분 발 열차로 신오사카 역에 닿으니 14시 5분. 다시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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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배 교수님의 부음을 듣고…
아, 옛날이여! 아, 옛날이여! 또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라고 말들 하지만, 다리를 건너는 입장에서야 어찌 한 끗에 불과했으랴? 유쾌함보다는 불쾌함이 개운함보다는 찝찝함이 더 많은 세월이었으리라. 지지고 볶으며 짜오던 한 자락 삶을 베틀 째 팽개치고 이리도 홀홀히 떠나는 게 인생인 것을. “90 평생이 한 나절의 꿈같았노라!”고 깨달음의 말씀을 남기시며 돌아가신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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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수산(Susan Ahn Cuddy) 선생님!
안수산 선생 노스리지(Northridge) 선생의 자택에서 선생 모자와 백규 가족 자택에서 책을 중심으로 환담하는 선생과 백규 가족 자택에서 환담하는 선생 모자와 백규 가족 아, 안수산(Susan Ahn Cuddy) 선생님! 1991년 1월 16일. 1월이 캘리포니아에 비가 잦은 계절이긴 하지만, 그 날은 약간 햇볕이 들었었지요. 귀국을 며칠 앞 둔 시점에 우리 가족은 미리 약속했던 대로 안수산 선생님 댁을 방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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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염병’을 치르며
21세기에 ‘염병’을 치르며 내가 얼굴도 못 뵌 외할머니는 1940년대 초 이 땅을 휩쓴 염병[染病, 장티푸스]의 와중에 동네사람들을 간병하다 돌아가셨다. 당시 염병이 돌자 마을 바깥에 천막을 쳐 놓고 고열과 설사로 신음하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간호하시다가 그 병에 감염되신 외할머니. 모두가 존경하던 여장부이셨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는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한 채 40대 중반에 세상을 뜨셨다. 병원도, 약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