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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을 넘어 공감으로

    서울을 떠나던 날 절친에게 문자를 날렸다. ‘40년 애증의 공간 서울을 탈출하네. 방금 노마드의 천막을 걷어 나귀 등에 실었네. 에코팜에 이 천막을 둘러치고 잔명을 즐기다 그마저 해져 흙으로 돌아가면, 어렵사리 지탱해온 이 몸도 한 숟갈 거름 되어 대지 깊숙이 스며들고자 하네. 아듀!’. ​ 젊은 시절엔 삶의 공간들을 제법 옮겨 다녔다. 마지막 공간을 정하기까지 20여 년. 끝없는…

  • 새겨라, ‘용비어천가’

    작년 말, ‘환경・사회・지배구조’ 통합을 핵심가치로 삼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어느 학회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다. 주제는 ‘용비어천가(이하 ‘용가’)와 풍수(風水)의식’. ‘용가’는 변함없는 내 연구대상 중 하나이고, 풍수는 그 학회의 핵심가치 중 환경과 직결된 사안이다. 어찌 환경뿐이랴? 요청을 받자마자 이상적 ‘거버넌스(governance)’의 합리적 진술이자 ‘지속가능성’의 바이블이 용가임을 알려주고픈 의욕이 솟구쳤다. ‘용비어천가를 모독하지 말라’는 제목의 시론을 발표한 것이 20년 전의…

  • ‘지식잔치’가 끝나간다

    최근 어느 연구소의 학술발표회. 연 4회 열던 발표회를 한 차례로 줄인, 바로 그 행사였다. 몇 년 전까지 발표자와 토론자 외에 관심 있는 인사들도 찾아와 그리 썰렁하진 않았으나, 이번은 달랐다. 기획이 신선하고 난방도 ‘빵빵한’ 공간에 발표자와 토론자들, 행사 진행자 서너 명이 전부. ‘폭망’ 수준이었다. 1970-80년대, 대표학회의 학술대회는 대부분 서울의 대학들에서 열렸다. 버스를 갈아타면서 대회가 열리는 강당에…

  • 사람으로 사는 죄

    ​ 최근 뉴스를 탄 ‘고양이와 개 학대’ 사건들. 세월은 좋아졌다는데, 우리는 왜 동물들에게 여전히 잔인할까. 어릴 적, 등교 전 암소를 풀밭에 매어 놓았다가 하교 후 데려오는 일이 내 임무 중 하나였다. 그 소는 매년 송아지를 낳았고, 송아지는 생후 반년 뒤쯤 팔려가곤 했다. 떠나기 며칠 전 송아지 목에 밧줄이 걸리면, 어미 소는 이별을 직감하고 식음을 전폐한…

  • 한 장 남은 달력을 뜯기 전…

    마지막 달력 한 장, 달랑 남았다. 시인 정재영은 ‘끊을 수 없는 시간을/토막 내어 염장해 놓고/긴 것 짧은 것을 꺼내 먹는다’고 1년 치 달력을 절묘하게 읊었다. ‘긴 것’이라야 ‘단 하루’ 더 있을 뿐. 더구나 365일이 ‘폰’ 안에 들어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달력을 아예 걸지 않는 친구도 있다. ​ 이맘때면 수많은 기업체들, 대학들, 은행들은 달력을 ‘예쁘게’ 만들어…

  • 국문과가 사라진다

    내 어릴 적, 삶의 근저에 대한 성찰로 이끌어준 분들은 대부분 국어선생님들이셨다. 긴 고민 끝에 교사가 되기로 결정했고, 국어교사를 거쳐 국문학 교수가 되었다. 교수로 첫 발을 내디딘 80년대 전반 ㄱ 대학의 원로교수 한 분은 늘 ‘국문과는 1등 학과야!’라는 멘트를 반복하셨고, 그 말씀이 법조문에 나오기라도 한 듯 나도 학생들도 덩달아 자부심을 가졌었다. ​ 10여 년 전, 어느…

  • 추억은 힘이 세다!

    볕 좋은 가을날 하교 후 ‘낚시광’ 담임 선생님과 바닷가에 나가 망둥이 잡던 일, 한밤중 동네 형들과 참외밭에서 서리하던 일, 아버지 따라 간 장터에서 짜장면 먹던 일, 이웃 누나와 옆 동네 청년 사이의 연애편지들을 배달하며 몰래 훔쳐보던 일, 아침저녁 누렁소를 바닷가 백사장풀밭에 매어 놓았다가 끌어오던 일 등. 고향 친구들의 모임에선 추억담이 끊이지 않는다. 엊그제 일도 까맣게…

  • 이제 고희는 ‘아흔’

    8세기에 58년을 살다 간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712~770). 좌습유라는 미관(微官)으로 황제에게 직간을 거듭하던 중 스트레스가 심해졌기 때문일까. 퇴근 후 곡강(曲江)의 술집에서 옷을 저당 잡히며 술을 마시곤 했다. 명구(名句)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를 통해 ‘고희(古稀)’란 명 단어를 남겨준 게 그의 시 ‘곡강’(2수)이다. 8세기에 70이던 ‘고희’가 21세기엔 몇 살로 바뀌었을까. ​ 내 어릴 적 마을의 성대한 행사는 어른들의 회갑잔치였다. 소리 치고…

  • ‘느림’의 경제 가치

    얼마 전, 바쁜 일로 차를 몰던 면소재지 중앙로. 앞쪽의 차가 무슨 연유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추월하던 중 삐져나오는 앞차와 접촉하고 말았다. 보험사가 출동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차체 수리에도 며칠이 걸렸으며, 돈도 꽤 들어갔다. 조급함의 결과였다. ​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어느 날. 학교 파한 뒤 고픈 배를 부여안고 고갯길 넘어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갑자기 천둥소리를 내며…

  • 서울 개와 시골 개

    반려견 ‘초코’와 함께 돌아온 전원. 서울에서는 그와 함께 매일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고, 전원에서는 냇가의 샛길을 즐겁게 걸었다. 그는 길가의 풀숲에 머리를 쳐 박고 스쳐간 동물들의 자취를 탐색하며 대소변도 자유롭게 해결하곤 했다. 초코 떠난 뒤 마을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하여 ‘후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밥・집・산책로 등을 떠나간 초코로부터 물려받은 그는 우리와 삶의 여건들을 공유하는 중이다. 후추와 산책할…